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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29] 평북 망안산 ‘대호’ 제압 ‘초자연적 존재자’

작성자
인산한의원
작성일
2023-11-06 16:55
조회
430
이 세상에 태어나 17, 18세의 청년이 되기까지 이미 수많은 경우에 인간의 능력으로써는 행할 수 없는 일들을 해왔거니와, 아무리 운룡 스스로 인적이 드문 산중을 전전하며 삶을 영위하던 10대 후반의 때였다고는 하더라도 그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천계(天界)와 영계(靈界)를 넘나드는 초자연적 존재라는 사실은 감춰지지가 않았다.

한번은 운룡이 평안북도 망안산(望眼山) 근처에 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망안산에 백두산 대호(大虎)가 산다고 했다. 백두산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그곳에까지 백두산 대호가 내려와 산다면 필시 그 호랑이는 대단한 놈이리라는 생각이 든 운룡은 자신의 영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아, 망안산 대호라면 우리 인동에서는 효(孝)와 보은(報恩)의 수호자이며 날래기가 이를 데 없는 벽사(辟邪)의 산신령으로 여기는 영물이지. 암 영물이고말고. 그 이마에는 눈이 부신 흰색 털이 임금 왕(王) 자로 나 있고…… 몸체가 커다란 황소보다도 커서 체중은 천 근 이상이고…… 이 세상에서는 최고로 용맹스러워 천하무적이면서도 후중(厚重)하기가 이를 데 없는 수중왕(獸中王)이지. 눈 위에 남긴 발자국을 보면 그 발 하나가 우리 어른 손바닥을 두어 개 펼친 것보다도 더 크단 말씀이야. 발자국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원래 호랑이의 발자국은 일렬로 곧거든. 앞발이건 뒷발이건 왼쪽 발이건 오른쪽 발이건 조금도 일직선상에서 비껴가지 않는단 말씀이지. 아, 그런데 망안산 대호의 발자국은 일직선은 일직선이되 그 발과 발 사이의 간격이 무려 열 자가 넘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셈이지. 생각해 보게나. 네 발로 뛰는 짐승의 발자국이 그렇다면, 그건 비호(飛虎)라는 말로도 무색하지 않겠나 이 말일세. 그런데 정말로 망안산 대호가 신령스러운 것은…… 망안산을 중심으로 사방 50리 이내에서 사람이 호환(虎患)을 당했다는 예가 전무하다는 것일세. 뭐 망안산 대호 자체가 사람에게 피해를 안 줄 뿐만이 아니라, 아예 다른 호랑들이 이 지역에는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을 만큼 제 영역을 완벽하게 지키기 때문에 그렇다네. 다른 산에서 살던 호랑이가 제 영역에 들어오면 어느 틈에 쫓아가서 물어 메친다는 걸세.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아주 마음 놓고 돼지이고 소를 바깥에 내놓고 먹이지. 망안산 대호가 지켜 주니까.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정작 저 자신은 산속에서 노루나 멧돼지를 잡아먹거나 50리 바깥에 가서 돼지를 물어 와도 물어오는 것이지, 제 영역 안의 인가(人家)에는 절대로 피해를 주지 않는단 말일세.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망안산 대호를 산신(山神)으로 여긴다네.”

운룡이 듣기에도 망안산 대호라는 것의 영력(靈力)이 일개 말 못하는 짐승으로 여길 정도는 넘는 것 같아 보였다. 사실 운룡은 그때까지 호랑이를 직접 마주쳐 본 일이 없었기에 그 참에 호랑이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 호랑이와 서로 지니고 있는 영력의 크기를 겨루어보고 싶었다. 망안산 밑에서 살아온 그 노인은 운룡의 속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망안산 대호의 영력이 결코 예사로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언젠가 봄날에 아녀자들이 나물을 뜯으러 망안산에 들어갔다가 대호를 만난 일이 있었지. 본래 여기 사람들은 망안산 기슭에서부터 일절 낫을 대지 못하지. 원체 무서워서. 뭐 대호한테 물려 갈까 봐서라기보다는 그저 두렵고 어려워서 그렇다는 얘기이지. 그런데 그 아녀자들은 어떻게 나물 뜯기에 정신이 팔려서 그랬는지 좀 산이 깊은 데까지 갔다가 중강아지만 한 호랑이 새끼들을 만난 걸세. 멋모르는 아녀자들은 호랑이 새끼들이 귀여운 나머지 새끼 호랑이들을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기까지 했다는 걸세. 그때 어미 호랑이, 즉 대호가 온 산이 울리도록 우렁찬 소리로 자기의 존재를 알렸다는 게야. 제 새끼들을 다치게 하지 말라는 경계의 뜻이었을 테지. 하지만 희희낙락하던 아낙네들이 그 뜻을 알 수 있었겠나? 그저 어미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사실 앞에 혼비백산하여, 가지고 있던 나물바구니고 뭐고 다 내동댕이치고 신짝이 벗겨지는지, 치마폭이 찢어지는지도 모르는 채 허겁지겁 마을로 구르다시피 내려왔다네. 그런데 문제는 그중의 한 아낙네가 어찌나 식겁을 했던지 마을로 내려오고 나서야 업고 있었던 아기가 없어진 사실을 깨달았다는 게야. 기가 막힐 일이지 않겠나? 혼절했다가 깨어난 아기 엄마가 울고불고 하면서 장정들 수십 명과 함께 산길을 되짚어 올라가며 아기를 찾아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아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게야.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간에 나가 보니 산에 올라갔던 아낙네들의 집집마다 그 집 아낙네가 산에다 내팽개치고 온 나물바구니며 호미 자루, 신발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는 걸세. 그리고 아기를 잃어버렸던 집의 문 앞에는 강보로 여물게 감싸인 아기가 곤히 잠든 채 놓여 있었고 말일세. 필시 망안산 대호가 제 어미 등에서 떨어진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따듯이 재워 집 앞에다 갖다놓은 게 아니겠나? 대호가 제 영역에 사는 사람들의 집집의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모두 꿰고 있으며, 자기들을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그때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된 거지. 여하튼 대단한 영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운룡은 다음 날로 미숫가루를 조금 챙겨 들고 망안산을 오르게 되었다. 우거진 숲이 하늘을 가려 컴컴한 밀림을 헤치며 한참 오르다 보니 사람이 근접하기 어려운 석벽에 자리한 호랑이 굴을 찾을 수 있었다. 운룡은 호랑이 굴에 다가가며 자신에게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유심히 살폈다. 자기에게 뭔가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진다면 자신의 영력이 호랑이의 영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증거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운룡은 호랑이 굴에 가까이 갈수록 한기는커녕 도리어 훈훈한 온기가 제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운룡은 제 집을 찾아 들어가듯이 호랑이의 굴 안으로 성큼 발을 들이밀었다. 그러고 스무 발짝 가량 굴 안으로 들어가 어둠에 눈이 익었을 때, 한자리에 몰려 잠들어 있는 새끼 호랑이 세 마리를 볼 수 있었다. 그 순간에도 어미 호랑이는 분명코 어디에선가 운룡을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새끼들을 염려하는 어미 호랑이의 마음일지라도 운룡의 영력에 압도되어 감히 그 앞에 나타나지를 못하고 먼발치에 숨어서 운룡의 거동을 살필 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운룡은 아예 그 굴 안에서 한 잠을 잘 요량으로 밖에 나가 낙엽을 긁어다가 굴 바닥에 깔고 드러누웠다. 신선이 따로 없을 듯이 몸과 마음이 편안하였다.

얼마 동안이나 잠들어 있었는지는 몰라도 새끼 호랑이들이 운룡의 귓불과 뺨을 핥고 몸 위에 올라 앉아 버르적거리는 통에 잠을 깨었다. 아마도 새끼 호랑이들은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새끼들에게 젖을 주어야 할 때가 지났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어미 호랑이는 여전히 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운룡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를 지으며 굴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호랑이 굴로부터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의 샘가에 가서 미숫가루를 타 먹고 한두 시간쯤 더 지체한 후에 다시 호랑이 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어미의 젖을 배불리 먹은 새끼들은 다시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어미 호랑이는 새끼들에게 급히 젖만 먹여 놓고 또 다시 몸을 피해 있었던 것이다.

‘오호라, 이곳의 어미 호랑이는 내가 있는 굴 앞에만 오면 사지가 오그라들어 오금을 못 쓰는 게로구나!’

그로써 운룡은 망안산 대호의 영력이 자기에게 미칠 바가 못 되며, 그로 인해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함을 확인하고서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운룡의 안광(眼光) 자체가 이미 호랑이의 안광을 제압할 만큼 대광(大光)을 이루고 있던 때였으니, 산신으로 불리던 망안산 대호라 하여도 감히 범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연유로 운룡이 가는 산길에는 노루ㆍ사슴ㆍ토끼 등의 길짐승뿐만이 아니라 멧비둘기·산까치 등의 날짐승들도 모여들었다. 호랑이와 같은 맹수가 가까이 다가오지를 않으니 운룡의 주변이야말로 그들 짐승들에게는 가장 안전한 지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짐승들 가운데에는 내생에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갈망을 갖고서 운룡에게 다가오는 짐승도 있었다.

운룡은 수도 없이 그런 산짐승들의 이마에 손바닥 장심(掌心)을 얹어 내생의 영로(靈路)를 열어주었다. 한창 때의 운룡의 손바닥 장심 온도는 37도 이상에 달했다. 대소한(大小寒)에 숲속에서 노숙하여도 동상에 걸리는 일이 없었으며, 땀에 젖은 올이 얼어 뚝뚝 부러질 지경에 처한 삼베 중의(中衣) 적삼을 얼음을 깨고 그 밑에 흐르는 물에 흔들어 짜지도 않은 채 툴툴 털어 입으면 이내 무럭무럭 김을 피워 올리며 온몸에 훈기를 더하여 주곤 했다.

운룡이 야수(野獸)들에게 영중(靈中) 신기류(神氣流)의 묘력(妙力)으로 환도인생(還道人生)의 인연과 영로를 열어주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것은 오로지 자비심 때문이었다. 그는 그 자비심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능력으로 온 인류를 질병에서 구제하겠다는 뜻에 따라 산중에 유리(遊離)된 채 고난의 행로를 거듭하였다. 그의 몸은 비록 하나이되 그 하나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생의 수십억 인류를 비롯하여 후생의 몇 백억 몇 천억 인류의 건강한 삶을 지켜 내는 보루(堡壘)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은 때가 우리 겨레가 나라를 잃고 왜놈들에게 압제를 받는 때이므로 공연히 저들의 눈에 띄어 해함을 입지 않도록 은인자중(隱忍自重)해야 하느니라.”

운룡이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어온 할아버지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천하의 칼도 불도 자신을 해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자신하고 있었다.

망안산 호랑이 굴에서 3일을 지낸 운룡은 호랑이 영력하고 자신하고 마주선 경험을 한 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천지간에 이런 드문 영물이구나. 내가 죽을 때에는 만고(萬古)에 없는 글을 쓸 수 있겠구나. 내가 아는 걸 반드시 후세에 전하리라. 만약에 내가 미물이라면 호랑이를 보고도 무서워했으리라. 그런 인간이 썼다 하면 그 글은 만고에 대우받을 글이 못될 것이야. 또 만고에 인류를 구원할 수도 없고. 내가 죽은 후에 나오는 글은 참말로 무서운 글이 나올 거다.’

출처: http://kor.theasian.asia/archives/31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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