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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27] 하늘 뭇별과 땅위 만물의 약성을 규명하다

작성자
인산한의원
작성일
2023-11-06 16:54
조회
465
늦가을 산속의 밤기운은 벌써 에일 듯이 차가웠다. 겨울이 곧 닥쳐올 것임을 예감하기가 어렵지 않은 밤이었다.

산속에서 지내는 생활은 말할 수 없이 곤궁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약(神藥)의 구명(究明)을 위해서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산의 정상 부위에 올라 밤을 지새우며 뭇별들의 정기가 왕래하는 기운을 감지해 보거나, 그 정기들이 어느 풀 어느 나무에 응하여 화생하는지를 관찰하여 보면, 곧 신약의 효능과 적응증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운룡은 그동안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 가운데 훌륭한 약물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동해산(東海産) 마른 명태나 토종 오이, 집오리, 돼지 등은 모두 천상 28수(宿) 중의 여성정(女星精)으로 화생한 물체로서 강한 해독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여성정은 네 계절 가운데 음력 10, 11월(亥子) 수왕지월(水旺之月)에 해당되며, 신자진(申子辰) 수국(水局) 수기(水氣)의 정수(精髓)이므로 형혹성(熒惑星)에서 오는 독기(毒氣)나 28수 중의 유성(柳星) 독기를 소멸시키는 묘력(妙力)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체에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형혹성이나 유성 독기는 사오(巳午) 화왕지월(火旺之月)에 해당되며 인오술(寅午戌) 화국(火局)의 화독(火毒)이므로 여성정의 수기를 만나면 즉시 소멸하는 이치이다.

따라서 연탄가스 중독이나 독사에게 물려 독해(毒害)를 받고 있는 환자에게는 마른 명태 달인 국물이 신효(神效)하며, 심한 화상독(火傷毒)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는 토종 오이의 생즙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이처럼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신약들이 평범한 일상생활 주변에 널려 있으되, 그런 것들이 약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가까운 곁에 좋은 약을 두고도 약을 구할 수 없어서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려 고통과 신음 속에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운룡은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산속에 머무는 동안 하늘의 뭇별들과 땅 위의 만물이 지닌 약성 사이에 내재하는 함수 관계를 규명하고 정리하여 장차 점점 더 극심해져 갈 화공약독과 공해독으로 인한 인류의 각종 난치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들을 터득해 나갔다. 운룡은 그야말로 우주라는 이름의 광맥(鑛脈)에서 인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신약을 캐내는 하늘 광부인 셈이었다.

묘향산 기슭에 자리잡은 어느 마을에 잠시 머물 때였다. 운룡은 그 마을에 머문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그 마을에는 유난히 연로한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거의 집집마다 80, 90세의 노인들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100세를 넘겨 살고 있는 사람도 여럿 되었다. 불과 30여 호의 작은 산촌에 불과한 마을 규모에 비해서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특이 현상이었다.

운룡이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서 알게 된 바로는, 그 마을 사람들은 대개 그와 같이 장수하는 편이며 평소에도 병치레를 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운룡이 천체의 운행과 지상의 만물이 서로 어떻게 감응하고 정기를 수수(授受)하여 약성을 띠게 되는가를 따지며 그에 따른 질병 치료의 길을 모색하였다면, 그 마을에서는 역으로 건강한 상태로 장수(長壽)하는 사람들에게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하였다. 그것은 운룡에게 있어서 인간을 통하여 약성 물질을 더듬어 올라간 첫 번째의 사례가 되었던 일이다.

그 마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가운데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것이 있었다. 그들의 식생활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그들은 느릅나무 껍질과 그 뿌리의 껍질, 즉 유근피(楡根皮)를 늘 먹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이 그 효능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산에서 채취한 느릅나무의 껍질을 벗겨 율무가루와 섞어 떡을 만들어 먹거나 옥수수 가루와 섞어 국수도 눌러 먹는 것이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어쩌다가 몸에 상처가 나도 일절 곪는 일이 없었으며,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은 사람도 보지 못하였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을 빼놓고는 잔병조차 앓는 이도 드물 만큼 온 마을 사람들이 두루 건강하였다. 거기에는 물론 다른 원인도 어느 정도 가미가 되기는 하였지만, 마을 사람들이 유근피를 상복(常服)한 데서 생긴 결과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처럼 유근피는 각종 종창(腫瘡)과 비위(脾胃) 질환에 매우 좋은 치료제였다. 그것은 특히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 소장ㆍ대장ㆍ직장의 궤양, 식도 궤양 등 제반 궤양증에 탁효(卓效)가 있으며, 부종(浮腫)ㆍ수종(水腫) 등의 악성 종창과 등창ㆍ후발종(後髮腫)ㆍ복창(腹脹)ㆍ견창ㆍ둔종ㆍ음낭암 등 각종 암종(癌腫)을 근치할 수 있는 영약(靈藥)이다.

일반적으로 종창에 잘 듣는 약은 암을 치료하는 데에도 쓸 수 있다. 최고의 종창 약으로는 토산 웅담과 사향, 산삼 가루, 녹용 가루 등인데 그런 것들 다음으로 유근피를 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약재들은 모두 치료제이기에 앞서 암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암 예방의 효과를 갖는 양약(良藥)들이기도 하다.

운룡은 악성 종창을 통증 없이 낫게 하는 것으로 유근피가 가장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근피에는 강력한 진통제가 함유되어 있으며 살충 효과까지 높은 반면 약의 일반적인 속성이랄 수 있는 중독성(中毒性)이 없어서 장복(長服)을 해도 아무런 해가 없다는 것도 아울러 알았다. 한마디로 유근피의 작용을 요약해 말하자면 아주 강력한 거악생신(去惡生新) 기능이라 할 수 있다. 병든 부분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조직을 배양해 내는 작용이 강한 약물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운룡은 산 위에서 밤을 지새우며 별의 정기 왕래를 관찰할 때 푸른 기운이 유독 짙게 어려 있는 나무를 발견하고 그것이 간병(肝病)의 영약인 벌나무(蜂木)와 느릅나무였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느릅나무는 대부분의 다른 영약들과 마찬가지로 지상 만물의 생기(生氣)와 길기(吉氣)를 주재하는 목성(木星), 즉 세성(歲星)의 정기를 받아 화생한 것이다.

그 뿌리의 껍질인 유근피는 앞에서 밝힌 각종 종창과 비위병, 궤양 외의 여러 가지 질병에도 단방(單方)으로, 혹은 혼합 처방으로 쓸 수 있는 신비로운 자연산 약재였다. 운룡은 그때 이후로 수많은 환자에게 유근피를 처방하여 그 질병을 치유케 하였다.

출처: http://kor.theasian.asia/archives/31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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