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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24] 16살 운룡, ‘지을룡’ 가명으로 만주 모화산 독립군 부대 합류

작성자
인산한의원
작성일
2023-11-06 16:52
조회
278
1924년(甲子) 가을은 압록강 물빛에도 짙게 드리워졌다. 운룡은 마을 친구 네명과 어울려 의주(義州)의 압록강 강변으로 바람 쏘이러 나갔다. 강가에 군락을 지어 자라난 억새들이 강바람에 따라 일제히 한 방향으로 쏠리며 나부끼는 모습이 파란 하늘 아래 가을 정취를 더해 주고 있었다. 남쪽으로 이동하는 중에 잠시 머물고 있는 듯한 논병아리 떼가 강심(江心)에 떼 지어 떠 있는 모습도 한가로워 보였다.

“왜놈들이 제아무리 설친다고 해도 저 하늘과 강물마저 빼앗아 가지는 못할 테지?”

운룡의 친구 가운데 한 아이가 말했다. 아직 어린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는 그들은 그날도 우리 땅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본의 갖가지 침략적 수탈 행위에 대한 비판과 울분을 화제로 삼고 있는 중이었다. 운룡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 내 얘기 좀 들어봐라.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하다만 본래 여기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이 일본의 진무(神武) 천황이 되었거늘, 왜놈들은 제 어버이 나라를 침략하여 짐승 같은 짓을 일삼고 있으니…… 이게 다 형제를 죽이고 아들을 죽이고 충신들을 죽인 더러운 이조(李朝)의 역사 때문이야. 화랑정신으로 무장한 신라의 역사가 얼마나 찬란했었는 줄 아니? 삼국 통일을 이루었대서가 아니라 그때는 당나라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는데 원효(元曉)라는 자가 나타나 ‘부처가 제일’이라고 하는 바람에 역사의 빛이 바래지기 시작한 거야. 결국 신라도, 고려도 그 불교 때문에 망했지. 원효가 초발심(初發心)이랍시고, ‘애착을 버려라. 부모도 버려라’라고 했거든. 미련한 돼지도 제 어미를 따르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이 저를 낳아 길러준 부모를 버린대서야 말이 되겠니? 인간은 누구나 조상의 영력(靈力)으로 그 계통이 서는 것인데…… 너희들 한번 생각해 봐라, 부처님하고 너희들하고 무슨 계통이 서 있을 수 있겠니? 원효가 설쳐댈 때에는 이미 화랑정신으로 무장했던 신라 사람들은 모두 늙어 죽고, 불교의 전성시대를 맞아 그대로 앉아서 망해버린 것이지. 고려 때도 불교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앉아서 망했고, 이조에 와서는 마침내 5백년을 못 버티고 왜놈들에게 먹혀버리는 꼴을 당하지 않았니? 이조 역사에 태종이 아우 죽이고, 세조가 조카 죽이고, 영조가 아들 죽인 것 말고 무얼 말할 수 있겠니? 태종이 인간이냐? 나라를 뒤집어놓는 역적질을 하고서는 제 말을 듣지 않는 충신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잖아. 오죽하면 이성계가 아들인 태종을 죽이려 들었겠냐? 그동안 뜻있는 사람들이 의병이다 독립군이다 해서 고생을 하고 목숨을 바치기도 했지만, 우리의 역사를 되찾아 바로 세우려면 모두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왜놈들이 노리는 건 최종적으로 중국 땅마저 집어삼키려는 것인데, 그건 큰 오산이지. 살쾡이가 소를 잡아먹겠다고 소의 발목을 물면, 소에게 깔려죽게 되는데, 그걸 모르고…….”

운룡의 친구들은 운룡이 펼치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넋을 놓은 채 귀를 기울이며 강둑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 때 저 멀리서 조선말로 울부짖는 소리와 일본 욕설이 들렸다. 운룡 일행은 시끄러운 곳으로 달려갔다. 같은 또래의 일본인 아이들 열 댓명이 조선 아이 하나를 빙 둘러서서 괴롭히고 있었다. 눈앞의 광경은 처참하였다. 열 다섯명 쯤 되는 놈들이 조선아이를 끓어앉혀 놓고 잔인하게 발로 차고 있었다. 봉두난발에 입술은 부어터지고 핏물,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가련한 모습을 보자니 운룡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 일인 아이들은 마을을 휩쓸고 다니며 심심하면 조선 아이들을 괴롭히기로 소문난 패거리들이었다. 안 그래도 한번 혼줄을 내줘야겠다고 벼르던 차였다.

“이 개새끼들!”

운룡은 그 중에서 대장격인 가장 악질놈에게 뛰어들며 발길을 날렸다. 그 놈이 피를 흘리며 고꾸라지자 15명의 일인과 5명의 운룡 일행은 격렬하게 맞붙었다. 아이들 싸움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격투가 벌어졌다. 그 동안 분노가 모두 분출되어 일인 아이들은 머리가 깨지고 이빨이 튀어나가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정강이가 나갔다. 운룡은 불같은 성격이라 악의 앞에서는 인정사정 없었다. 반쯤 죽을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팬 후에 골목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기 시작하자 왜경이 오기 전에 운룡 일행은 번개같이 달아났다.

집으로 돌아가면 분명히 형사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어 운룡일행은 이대로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자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 날로 운룡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훌훌 떠났다. 당시 만주 장백현에는 독립군 모화산부대가 있었는데 변창호 대장이 이끌고 있었다. 16세의 운룡은 친구와 독립군 부대원이 되어 전투에 참가하게 되었다. 가을은 점점 깊어가고 황량한 만주 벌판의 바람은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운룡의 독립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변창호 대장이 이끄는 만주 모화산 부대에 합류한 운룡은 자신을 지을룡(池乙龍)이라고 소개하였다. 당시에 독립운동에 뛰어든 우국지사들은 고향에 두고온 가족들에게 가급적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원을 일절 밝히지 않고 가명(假名)을 사용하였으며, 동지들 간에도 서로의 본명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모화산 부대를 이끄는 변창호 대장 역시 본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시천파의 대표이며 대학자였다. 변창호 대장은 지을룡의 선풍도골(仙風道骨) 형 외모와 쇳덩이처럼 단단해 보이는 풍체에 나이가 가장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깊이 신임하였다.

독립군 부대는 게릴라 전술을 펴며 숫자면이나 화력면에서 비교할 수 없이 강대한 일본군대와 전투를 벌이며 괴롭혔다. 그 당시 지을룡 대원이 보여준 눈부신 활약은 점차 동료 대원들은 물론 반도 북쪽과 만주 일대의 한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하나의 전설처럼 회자(膾炙)되기 시작했다. 이 때의 용맹무쌍한 활약으로 지을룡이란 이름만 들으면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칠 정도로 중국인 마적과 일본군, 한인 사이에 무시무시한 명성을 날렸다.

만주에는 마적이라는 잔인무도한 중국 도적떼들이 있었는데 무리를 지어 말을 타고 달리며 도끼를 던져 사람들을 습격하여 목숨을 빼앗고 재물을 강탈해 갔다. 그들은 나라를 잃고 내쫓겨 만주에 밀려와 살고 있는 우리 조선인들을 못살게 구는 인정사정없는 약탈자들이었다. 마적들은 대개 야음을 틈타 바람처럼 짓쳐들어왔다가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는 했다. 일본인들도 마적이라면 벌벌 떨었다. 그렇게 잔인무도한 마적들이지만 지을룡이란 이름 석자만 들으면 도망치기 바빴다.

운룡이 마적을 만났을 때 그들이 말을 달리며 운룡을 향해 날린 도끼를 번개같이 받아채어 바로 그 도끼를 무리 중의 두목 가슴팍에 도로 던져 꽂아 고꾸라뜨렸던 것이다. 두목이 죽어자빠지는 것을 본 나머지 부하들이 혼비백산하여 순식간에 달아나버렸다. 마적떼가 아무리 사납고 무시무시해도 두목만 잃으면 오합지졸로 흩어진다는 점을 운룡은 간파했던 것이다.

출처: http://kor.theasian.asia/archives/313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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