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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④] 어머니 태몽···”용이 용틀임 크게 하더니 그대로 품안으로”
작성자
인산한의원
작성일
2023-11-06 15:57
조회
403
김면섭은 김만득의 신념에 찬 얘기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따라서 김면섭은 자기대로 환갑의 나이가 가깝도록 쌓아온 자신의 공부라는 것이 고작해야 수박의 겉껍질을 꿰뚫을 만한 깊이도 못 된다는 자괴감을 느끼는 동시에, 마주 앉은 김만득의 학문과 세상을 보는 통찰력은 가히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김면섭은 김만득의 예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한창 깊어졌을 무렵, 김면섭의 며느리가 저녁상을 받쳐 들고 사랑방으로 들어왔다. “소찬(素饌)입니다만 많이 드십시오.”
삼가는 몸놀림으로 얌전하게 밥상을 내려놓은 며느리가 두 사람 앞에 왼 무릎을 꿇고 양손을 짚으며 절을 한 뒤에 뒷걸음질로 물러서려 했을 때, 김면섭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며느리에게 물었다. “에미야, 혹시 네 몸에 지금 태기(胎氣)가 있더냐?”
며느리는 부끄러운 듯 얼굴에 홍조를 띠며 고개를 외로 돌리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어제 저녁까지도 몰랐었는데, 지난밤에 하도 이상한 꿈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무래도 태중에 아이가 든 것 같습니다, 아버님.”
“오, 그래? 그렇다면 간밤에 네가 꾸었다는 그 꿈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꾸나.” 김면섭은 ‘과연 그렇구나!’ 하는 마음에서 며느리가 시아버지인 자신과 낯선 길손 앞에서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쩔쩔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꿈 얘기를 해보라고 주문한 것이었다. 며느리는 여전히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저는 어느 때 어느 장소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가운데, 넓은 들판에 서 있었습니다. 하늘에 오색이 영롱한 꽃구름이 아름답게 피어올라 어쩌면 구름 빛이 저리도 고울까 싶어 한동안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천지가 진동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뇌성이 치더니, 아주 신령(神靈)스럽게 생긴 용(龍)이 하늘을 뚫고 불쑥 나타났습니다. 웬일인지 저는 놀라거나 무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커다란 용이 제 바로 앞 공중에서 용틀임을 크게 한 번 하더니 그대로 제 품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전 처음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며느리의 꿈 이야기를 듣는 김면섭은 줄곧 눈빛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고, 김만득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가락의 등 쪽으로 턱수염을 내쓸고 있었다.
김만득은 그 이튿날 아침 조반(朝飯)을 마치고 길을 나섰다. “김공, 소생이 당부 드린 말씀을 잊지 마시고 새겨두셨다가 새 손자를 보시거든 부디 잘 보살피십시오. 이미 모르는 것이 없는 상태로 태어날 것이므로 특별히 가르칠 것은 없겠으나, 국운이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이 나라에서 새 하늘을 열어갈라치면 불필요한 고초를 당할 수도 있으니, 소생은 그 점이 염려됩니다. 아무튼 소생은 이왕에 집을 떠나 예까지 왔으니, 함경도·평안도의 풍광(風光)을 좇아 유람도 하고 공부 경험도 더 쌓다가 내년 봄에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쯤이면 김공의 새 손자가 이 세상에 이미 와 있게 되겠군요.”
김만득은 괴나리봇짐을 등에 메고 초여름의 정갈한 햇빛과 온갖 수목이 자아내는 초록이 어우러지는 숲길을 따라 멀어져 갔다. 김면섭이 보기에는 마치 땅을 딛지 않고 지표면에서 둥둥 떠가는 듯 가벼운 그의 발걸음이었다.
출처: http://kor.theasian.asia/archives/310755
두 사람의 대화가 한창 깊어졌을 무렵, 김면섭의 며느리가 저녁상을 받쳐 들고 사랑방으로 들어왔다. “소찬(素饌)입니다만 많이 드십시오.”
삼가는 몸놀림으로 얌전하게 밥상을 내려놓은 며느리가 두 사람 앞에 왼 무릎을 꿇고 양손을 짚으며 절을 한 뒤에 뒷걸음질로 물러서려 했을 때, 김면섭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며느리에게 물었다. “에미야, 혹시 네 몸에 지금 태기(胎氣)가 있더냐?”
며느리는 부끄러운 듯 얼굴에 홍조를 띠며 고개를 외로 돌리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어제 저녁까지도 몰랐었는데, 지난밤에 하도 이상한 꿈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무래도 태중에 아이가 든 것 같습니다, 아버님.”
“오, 그래? 그렇다면 간밤에 네가 꾸었다는 그 꿈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꾸나.” 김면섭은 ‘과연 그렇구나!’ 하는 마음에서 며느리가 시아버지인 자신과 낯선 길손 앞에서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쩔쩔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꿈 얘기를 해보라고 주문한 것이었다. 며느리는 여전히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저는 어느 때 어느 장소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가운데, 넓은 들판에 서 있었습니다. 하늘에 오색이 영롱한 꽃구름이 아름답게 피어올라 어쩌면 구름 빛이 저리도 고울까 싶어 한동안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천지가 진동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뇌성이 치더니, 아주 신령(神靈)스럽게 생긴 용(龍)이 하늘을 뚫고 불쑥 나타났습니다. 웬일인지 저는 놀라거나 무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커다란 용이 제 바로 앞 공중에서 용틀임을 크게 한 번 하더니 그대로 제 품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전 처음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며느리의 꿈 이야기를 듣는 김면섭은 줄곧 눈빛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고, 김만득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가락의 등 쪽으로 턱수염을 내쓸고 있었다.
김만득은 그 이튿날 아침 조반(朝飯)을 마치고 길을 나섰다. “김공, 소생이 당부 드린 말씀을 잊지 마시고 새겨두셨다가 새 손자를 보시거든 부디 잘 보살피십시오. 이미 모르는 것이 없는 상태로 태어날 것이므로 특별히 가르칠 것은 없겠으나, 국운이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이 나라에서 새 하늘을 열어갈라치면 불필요한 고초를 당할 수도 있으니, 소생은 그 점이 염려됩니다. 아무튼 소생은 이왕에 집을 떠나 예까지 왔으니, 함경도·평안도의 풍광(風光)을 좇아 유람도 하고 공부 경험도 더 쌓다가 내년 봄에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쯤이면 김공의 새 손자가 이 세상에 이미 와 있게 되겠군요.”
김만득은 괴나리봇짐을 등에 메고 초여름의 정갈한 햇빛과 온갖 수목이 자아내는 초록이 어우러지는 숲길을 따라 멀어져 갔다. 김면섭이 보기에는 마치 땅을 딛지 않고 지표면에서 둥둥 떠가는 듯 가벼운 그의 발걸음이었다.
출처: http://kor.theasian.asia/archives/31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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