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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 36] 설령암 시절, 불임·폐선결핵·해수·골수염·척수염 등 난치병 낫게 하다

작성자
인산한의원
작성일
2023-11-06 17:03
조회
295
운룡이 설령암에 도착한 그 이튿날, 중년의 부부가 불공을 올리기 위해 설령암을 찾아들었다. 대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한 그 부부는 ‘설령암의 부처님께 빌면 득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속의 계시를 받고 정신없이 식량을 장만하여 왔다는 것이었다. 그들 내외는 운룡의 젊은 나이와 남루한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형형한 안광과 선풍도골의 풍모가 범상치 않음을 눈여겨보고 깍듯이 존칭하며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대하였다.

그 부부는 부랴부랴 마짓밥을 지어, 가지고 온 과일ㆍ나물 등속과 함께 불단에 진설(陳設)하였다. 운룡으로서는 얼마 만에 맡아 보는 밥 냄새인지 몰랐다. 25일간 깊은 산속으로만 이동하였기 때문에 곡기(穀氣)라고는 입에 댈 형편이 못 되었었다. 밤나무를 털어 자루에 채운 생밤으로 허기를 때우기도 했고, 설익은 다래를 따 먹기도 했다. 이동하는 도중에 만삼(蔓蔘) 한 뿌리를 캤는데, 족히 50년 이상 묵은 것이어서 그 속에 한 되가웃 되는 물이 고여 있었다. 그것을 마시고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었는데, 그 힘으로 설령암에 당도하기까지 몸이 거뜬하고 발걸음이 가벼웠었다.

부부의 불공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운룡은 그들과 공양(供養)을 하게 되자 정신없이 입 안에 밥을 퍼 넣었다. 씹을 새도 없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밥이 빈 위장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소화되어 물이 되는 것 같았다. 족히 십인분의 밥을 혼자서 다 먹어치우는 운룡을 부부는 신기한 듯이 바라보다가 25일을 굶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은 저 말없는 돌부처가 무슨 힘이 있어 두 분의 기도를 들어준다고 생각하십니까?”

“간밤에 신신령님이 저희 꿈에 나타나셔서 설령암의 부처님께 기도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산신령님이 현몽하셨는데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 부부의 정성이 가련하여 부처님이 자식을 점지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운룡은 전생에 이씨 성을 가졌던 적이 있으며 그 때 운룡의 아버지였던 이씨 어른이 모산의 산신으로 와 있어 운룡이 어려울 때마다 음으로 돕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도 운룡의 곤궁한 처지를 알고 신심이 깊은 부부에게 현몽하였다고 생각했다.

“두 분의 기도 정성이 하늘에 닿았나 봅니다. 곧 어두워질 터이니 빨리 하산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두 분이 원하시는 바를 이루어 드릴 테니 제가 적어 드리는 화제를 가지고 근처 의원에서 가서 약을 지어 드십시오. 약을 복용하는 기간 동안 술이나 내외관계를 하시면 안되고 돼지고기, 닭고기도 금기 식품입니다.”

운룡은 처방을 적어주면서 약제 법제법을 하나하나 일러주었다. 향부자와 익모초는 10세 전의 사내아이 오줌에 저녁에 담갔다가 아침에 건져 바짝 말리고 다시 오줌에 담갔다 말리기를 아홉 번 반복하고 천궁은 쌀뜨물에 담갔다가 바짝 말린 뒤 술을 뿜어 다시 말리고 세 번 반복하고 등등 세세히 설명하고 두 부부는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종이에 표시해가며 귀기울여 들었다. 그들 부부는 운룡의 설명이 끝나자 기뻐 어쩔줄 모르며 고맙습니다를 반복했다.

불임의 원인은 대개 부인 쪽의 냉성(冷性) 체질에 많아 자궁의 온기(溫氣)를 보(補)할 필요가 있으며 부인의 간에서 아기가 만들어지는 피가 자궁으로 내려와 수정이 이루어지므로 남자아이의 소변에 약재를 담가 정기를 보충하여 주면 임신이 가능해진다.

“누구신지 모르오나 선생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이리도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평생 소원이 이제 이루어진다 생각하니 죽어서도 조상님 뵐 면목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희 집안의 은인이시니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포태가 되시거든 그저 이 설령암의 ‘거지’에게 쌀이나 좀 보내주시면 됩니다.”

운룡은 합장 배례하는 그들 부부에게 맞절로써 화답하고 그들을 배웅하였다. 그들이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왔던 식량을 그대로 설령암에 두고 떠난 것은 당연지사였다. 자신의 굶주림을 해소시켜 주려고 그들 부부의 꿈에 현몽하여 그들을 설령암에 오게 한 전생의 아버지(李氏)가 보내주는 영력에 감사했다.

이듬해 봄에 산속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자 그 중년 남녀는 짐꾼 한 사람에게 식량과 반찬거리를 잔뜩 짊어지게 하고 약간의 돈을 장만하여 설령암을 찾아왔다. 임신 사실을 알리고 감사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그 시기에 운룡은 설령암 이외에도 묘향산 강선봉에 있는 강선암(降仙庵)과 천마산 영덕사(靈德寺)에 가서도 머물렀다. 그때 그가 머문 기간으로 따지면 강선암에 머문 기간이 가장 길었다. 그저 떠가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을 닮아 있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운룡이 태천(泰川) 고을을 지나가다가 마주친 중년의 남자에게 길을 묻게 되었다. 그런 시골 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양복 차림의 신사였다. 중년 신사는 본래의 품성이 그리도 자상하고 친절한 것인지, 아니면 보통 누구나 그러는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운룡의 외모에 압도당한 탓인지 아주 세세하게 정성을 다하여 길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운룡은 그 신사의 얼굴을 잠시 동안 마주보게 되었고, 그러는 운룡의 눈에는 고질(痼疾)이 되어버린 신사의 지병(持病)이 보였다.

“보아하니 선생은 지금 폐병을 심하게 앓고 계신데, 무슨 치료라도 받고 계신가요? 수수방관하고 내버려 두셨다가는 미구(未久)에 큰일을 당하실 텐데…….”

운룡은 중년 신사의 지병이 폐선결핵(肺腺結核)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으나, 상대의 반응을 보기 위해 넌지시 그저 짐작이 간다는 투로 말했다. 치료 경험이 많지 않은 보통 의원의 처방을 가지고는 쉽사리 고칠 수 없는 병이었다. 운룡의 말을 들은 중년 신사는 적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 그걸 어찌 알아보시었소? 어디서 오신 뉘신 줄은 모르오만 사람의 병증(病症)에 대해 남다른 안목을 지니신 게 틀림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 병증의 치료에 대해서도 알고 계실 것 아니오? 사실 나는 미장가 시절부터 폐에 병이 들어 지금까지 앓고 있는 게 사실이라오. 그래서 내 병은 내가 고쳐 보겠다는 생각으로 의술을 공부하여 내세울 것 없는 의생(醫生)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정작 내 자신의 병은 이날까지 물리치지 못한 형편이라오. 아무리 의서를 뒤져보고 경험 있는 동료 의원들을 찾아가 물어보기도 하였지만, 딱히 내 몸 안의 병을 잡을 방법을 알 수가 없어서……. 부끄럽기 짝이 없으나 내 몸의 병은 불치의 병 중의 하나로 여기고 체념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오.”

운룡에게 의원으로서의 무능력함을 스스로 털어놓는 중년 신사의 얼굴에는 짙은 자조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기야 자신의 지병을 고치지 못하는 상태에서야 어찌 의원으로서 남의 고뿔이나마 고쳐주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짐작을 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운룡은 그 중년 신사의 오래된 병을 단시일 내에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짐짓 여유를 가지고 말하였다.

“아직도 앞길이 구만 리 같은 분께서 삶을 체념하신대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선생께서는 금일 지병을 고치기 위해서 저를 만나신 것으로 아시고, 이제 체념이니 뭐니 하는 따위의 말씀은 입에 올리지 않으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드리는 처방대로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중년 신사의 얼굴에 비로소 희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운룡을 대하는 말투도 깍듯해졌다.

“어떻게 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 한눈에 선생이 귀인(貴人)임을 알아보았으니, 그저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할 것입니다. 제 몸의 병을 고치는 데야 마다할 것이 무엇이며 가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의 집이 바로 이곳 태천 읍내에 있으니, 지금 당장 저의 집으로 가셔서 며칠 묵으시면서 천천히 하교(下敎)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원이면서 이씨(李氏) 성을 가진 그 신사는 운룡을 자기의 집으로 이끌었다. 갈 길이 그다지 바쁘지 않았던 운룡은 이 의원을 따라 그가 운영하는 약방을 둘러보고 난 뒤에 그의 집에 여장을 풀었다. 시골의 한적한 읍내에 자리한 것치고는 약방의 규모가 큼직했으며, 그의 집 역시 번듯한 모양새로 이 의원의 적산(積産)이 꽤 넉넉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의원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병을 치료해 주는 한편, 묘향산을 비롯한 주변 산악지대에서 채취되는 각종 약재를 사들여 전국의 약재상이나 약방에 공급하는 사업을 병행하여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운룡은 이 의원에게 충분한 약성의 원리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의 지병을 다스릴 수 있는 처방을 일러주었다.

‘먼저 30근 정도 되는 토종 황구(黃狗)나 검은 염소를 잡아 털과 피하지방, 똥만을 제거한 상태에서 큰 가마솥에 넣고 푹 끓인 뒤에 이를 식혀서 위에 뜬 기름을 걷어내고 다시 더운 물을 보충하여 달이되 금은화 2근, 생강 1되, 토종 마늘 1접, 파뿌리(흰 부분) 30쪽, 은행을 불에 볶아 빻은 것 5홉 등의 약재를 준비하여 함께 넣는다. 이것을 마냥 달인 뒤에 엿기름을 두고 삭혀서 고아 조청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와는 별도로 원감초(元甘草) 2냥, 생강 5돈, 오미자(五味子) 3푼, 복어 알[河豚卵]을 5회 이상 생강으로 법제하여 분말한 것 5푼을 함께 달인 물에 죽염 5돈을 탄 뒤에 앞에서 만든 조청과 더불어 수시로 복용하라. 단, 복어 알은 폐질환 환자의 약으로서 법제한 연후에 사용해야 하며, 무병자(無病者)가 복용하면 사망하는 수가 있으므로 극히 주의하여야 한다.’

운룡이 이 의원에게 알려준 처방은 언뜻 보기에는 실로 간단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 안에 거론된 약재들은 모두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30년간이나 이 의원을 괴롭혔고, 그러면서도 고칠 수 없었으며 마침내 오래지 않아 그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병증이 심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처방은 헛웃음을 절로 불러일으킬 정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운룡이 하나하나의 약재가 어떻게 화생하였으며 어떤 성분으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다른 약재들과 함께 어떤 특별한 제조방법으로 만들어져 사용될 때 또 어떤 얼마나 다른 새로운 효능을 보이게 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자 이 의원은 감탄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가히 신의(神醫)라는 칭송을 받으셔도 오히려 부족할 것입니다. 일찍이 어느 의서에서도 보지 못한 약성과 치료의 원리를 그 지극히 일부분이나마 오늘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듣고 보니, 제 병은 이미 나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확신이 듭니다. 젊으신 나이에 어쩌면 그렇게도 독특한 용약(用藥)의 원리에 통달하여 신묘하기 이를 데 없는 처방을 마음대로 제시하실 수 있으신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선생님께서 구축하신 의학의 신세계는 비로소 인간의 건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완전무결한 신의학(神醫學)이 될 것입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선생님께서 세우신 의학 체계에 따라 모든 질병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선생님을 잠시나마 저의 집에 모시게 되어 그저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면전에서 듣고 있기에 다소 민망한 마음이 들 정도로 이 의원은 운룡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고는 평소에 자기를 찾아왔던 환자들 가운데 자신의 능력으로는 낫게 해줄 수 없었던 난치병 환자들에게 사람을 보내 속히 자기 약방으로 와줄 것을 요청했다. 그에 따라 그날 다섯 명의 환자들이 찾아왔다. 결핵ㆍ해수(咳嗽)ㆍ골수염ㆍ척수염 등의 질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이었다.

운룡은 결핵 환자에게는 이 의원에게 해주었던 처방을 일러주면서, 해수 환자에게는 정도가 아주 심하지는 않으므로 절채보폐탕(截瘵保肺湯)-별갑(鱉甲) 초(炒) 5돈, 하수오(何首烏) 5돈, 지율분(地栗粉) 3돈, 상백피(桑白皮) 3돈, 맥문동(麥門冬) 거심(去心) 2돈, 신곡(神曲) 초(炒) 2돈, 인삼 1돈, 백미(白薇) 1돈, 상녹용(上鹿茸) 2돈, 동충하초(冬蟲夏草) 1돈, 속껍질과 뾰족한 끝을 제거한 행인(杏仁)을 찬물에 담가 하룻밤을 재운 뒤에 짜낸 은행(銀杏) 생즙에 볶은 것 1돈 5푼-만 복용해도 된다고 했다.

골수염 환자에 대한 처방으로는 털과 똥ㆍ쓸개만을 제거한 토종 집오리 한 마리에 금은화 1근을 넣고 달인 약물과 가미금액단(加味金液丹)-법제한 유황과 죽염 가루를 혼합하여 만든 알약-50알을 식전에 복용하라고 권했다. 운룡은 자신이 가지고 온 죽염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며 가미금액단 제조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집오리는 하늘의 여성정(女星精)으로 화생한 생물이라 그 뇌 속에 아주 강한 해독 성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늑막염ㆍ결핵척수염ㆍ결핵관절염ㆍ골수암ㆍ골수염 등에 탁효를 보이는 신약이 된다는 이치도 아울러 설명해 주었다. 병에 따라 한 마리만 먹어도 완치되는 경우가 있고, 15~18마리쯤 먹어야 완치에 이르는 병도 있음을 주지시켰다.

척수염 환자에게는 잘 씻은 생강을 잘게 썰어 작은 가마솥 바닥에 1치(寸) 두께로 깔고 도마뱀[石龍子] 1근과 원백강잠(元白殭蠶) 1근을 그 위에 얹은 다음 가열하여 생강이 약간 타서 연기가 날 때쯤 도마뱀과 원백강잠을 골라내어 가루 낸 것을 오동나무 씨만 한 크기의 알약으로 만들어 하루에 두 번씩 진한 생강차와 더불어 1회에 50알씩 복용하라고 일러주었다.

한 부인은 온 몸의 뼛속이 쑤시고 아파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지경임을 호소해 왔다. 산후(産後)에 겪는 신경통이나 관절염 같은 증세로서 일명 사지백절유주자통(四肢百節流注刺痛)이라고 하는 병증이었다. 운룡은 그 부인에게 고방(古方)인 소풍활혈탕(消風活血湯)-당귀(當歸)ㆍ천궁(川芎) 각 5돈, 위령선(威靈仙)ㆍ익모초(益母草) 각 2돈, 백지(白芷)ㆍ방기(防己)ㆍ황백(黃柏)ㆍ남성(南星)ㆍ창출(蒼朮)ㆍ강활(羌活)ㆍ계피(桂皮) 각 1돈, 홍화(紅花) 3푼, 생강 5쪽, 대추 4알-에 인삼 5돈을 가미한 처방을 알려주었다. 소풍활혈탕이라 하면 부인들의 산후 골절통(骨節痛)을 다스리는 데 쓰인 예로부터의 처방인데, 운룡은 환자의 체질에 따라 인삼ㆍ약쑥ㆍ녹용ㆍ석고(石膏) 등을 가미하여 처방함으로써 그 효과를 높였다. 아울러서 그 부인에게 별도의 환약(丸藥)을 지어 복용할 것을 권하고 그 환약 제조법-오래 묵은 송진 1근에 막걸리 두 되 정도의 분량으로 하여 한데 넣고 끓인다. 송진이 녹은 뒤에 식혀서 체에 거르면 법제된 송진만 남게 된다. 그 송진을 참기름 3홉에 넣고 알약을 만들 만한 정도로 쫀득쫀득해질 때까지 끓인다.-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운룡은 그 알약을 가미소풍활혈탕을 달인 약물과 함께 50알씩 아침저녁으로 복용토록 했다.

그 밖에도 유암(乳癌)으로 사경(死境)에 임박한 한 부인이 가족에게 업혀서 왔는데, 운룡은 집오리 한 마리-털과 똥만 제거하고 쓸개 등 내장과 발ㆍ머리는 버리지 말고-를 흠씬 삶아서 식힌 뒤에 위에 뜬 기름을 걷어내고 마른 옻나무 껍질[乾漆皮]과 금은화 각 반 근씩과 포공영(浦公英) 한 근을 넣고 더운 물을 더 부어 약물이 한 되가량 될 때까지 푹 달여 하루에 3회씩 식후 30분 뒤에 복용하도록 했다. 그리고 처음 3일간에는 오리 달인 약물을 복용할 때마다 가미금액단 30알씩을 함께 복용하다가 3일 후부터는 50알씩 복용케 했다. 예상 치료 기간은 집오리 다섯 마리 정도를 달여 먹는 동안으로 잡았다.

모든 처방들이 금시초문의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들이었으나, 운룡이 각 약재가 환자들의 병증에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효능을 발휘하게 될 것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으므로 환자들은 확신을 가지고 운룡의 처방대로 약을 지어 복용하였다. 그리하여 운룡이 태천에서 하룻밤만 묵은 뒤에 길을 떠났다가 약 보름 만에 다시 돌아왔을 적에는 그들 대부분이 이미 완치되었거나 종전의 병증이 현저히 개선되어 있었다. 이 의원 역시 증세가 눈에 뜨일 만큼 좋아져 얼굴에 살도 오르고 혈색도 좋아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삶의 의욕으로 충만하여 활기찬 생활을 영위하게 된 점이 괄목할 만했다.

그 사이에 인근의 개천군과 영변군 등에까지 ‘태천 고을에 의술이 뛰어난 도인이 나타나 죽어 가던 사람들을 살려냈다.’는 소문이 퍼져나감에 따라 병을 고치기 위해 태천에 와서 운룡을 기다리고 있던 인근 고을의 환자들이 수백 명이나 되었다. 운룡은 꼬박 열흘간 이 의원의 약방에 머물면서 그 환자들을 진료하였다. 그리고 그 환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오랫동안 앓아왔던 병을 고치고 건강을 되찾았음은 물론이었다. 운룡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입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칭송을 뒤로 한 채 다시 설령암으로 올라갔다. 이 의원이 딸려 보내준 두 사람의 짐꾼은 모처럼의 넉넉한 식량과 반찬거리들을 지고 운룡의 뒤를 따랐다.

그로부터 설령암에는 운룡에게 치료를 받기 원하는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여 설령암까지 올라올 수 없는 경우에는 그 가족들이 올라왔다. 심지어는 멀리 평양에서까지 운룡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운룡은 차츰 자신의 안위가 염려스러울 정도가 되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탈옥을 한 상태였으므로 일경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운룡은 거처를 옮기기로 작정하고 은봉(隱峰, 1269m)의 9부 능선 층암절벽 사이에 자리 잡은 금선대(金仙臺)로 종적을 감추었다. 세상을 구할 사명을 지고 왔으면서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운룡의 가슴을 사무치게 할 뿐이었다.

산 아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을에서는 한 사기꾼이 ‘내가 태천 고을에서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의 병을 고친 도인이니라.’고 운룡의 행세를 하면서 엉터리 처방을 하고 비싼 값에 약을 팔았다가 결과적으로 몇 사람을 죽게 해놓고 줄행랑을 친 사건이 일어났던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출처: http://kor.theasian.asia/archives/31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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