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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⑨] 다섯살 운룡은 세상과의 소통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작성자
인산한의원
작성일
2023-11-06 16:00
조회
207
그 무렵 운룡의 아버지 김경삼은 그 갖추어진 학문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평안도와 함경도 각처에서 서당의 훈장으로 와달라는 초빙을 받았다. 김경삼은 한일합방 직전 강원도 관찰사 통천군수로 부임통지를 받았으나 부임하기 직전 합방되면서 정부가 사라진 부임통지서가 무용지물이 된 쓰라린 상처가 있었다.

김경삼은 원래 훤칠한 미남형이었고 학자에다 풍류가의 기질을 타고 나서 시문에 능하고 거문고를 잘 탔다. 그러다 출사의 길이 한번 꺾이고 나라 없는 현실에 뜻을 둘 수 없자 마음 맞는 친구들과 음악을 아는 기생들과 어울려 지내며 시와 음악에 심취해 지냈다.

운룡은 평안도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寧朔面) 천마리(天摩里)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 운룡의 조부 김면섭은 운룡을 외부의 눈길로부터 감추어 보호하기에는 차라리 낯선 곳이 적합하다는 판단 아래,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홍원 땅을 떠나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동네에고 못된 놈이 있기 마련이다. 가족들과 함께 마천리로 이주한 운룡은 그곳의 한 못된 깡패에게 괴롭힘을 당하였다. 운룡이 언어나 문자로 설명키 어려운 비범함으로 저희들과 결코 같을 수 없는 ‘큰 그릇’이라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동네 깡패들에게는 운룡도 그저 자기보다 훨씬 나이 적은 한 꼬마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동네에도 운룡보다 열 살이나 더 먹은 불한당이 하나 있었다. 큰 덩치에 심술맞기 그지없어 저보다 힘없거나 어린 애들을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운룡에게도 다른 꼬마들에게 하듯이 아무 일없이 재미로 흙탕에 쳐박는다거나 낄낄거리며 불러세워 쥐어박거나 하였다. 어린 운룡으로서는 분한 일이었지만 저보다 몇 배는 더 큰 놈에게 맞대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그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러지 같은 놈이 힘만 믿고 약자를 괴롭히다니, 내 기필코 네 놈의 버릇을 고쳐 주리라!’

벼르던 운룡은 어느 그믐날 밤 그 불한당 집의 길목어귀에 자기 주먹에 쥐기 좋을만한 돌멩이를 들고 몸을 숨기고 놈이 오기를 기다렸다.

‘내 이놈이 오면 단매에 물고를 내고 말리라!’

운룡은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어금니를 굳게 물었다.

드디어 잠 잘 때가 되자 덩치만 컸지 미련하기 짝이 없는 놈이 어슬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녀석은 어른보다 더 큰 덩치로 엉거주춤 걸어오고 있었다. 운룡의 키는 잘해야 녀석의 가슴께나 미칠까 말까 할 정도였다. 어둠은 운룡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운룡의 눈은 일반인의 시력과 달라 깜깜한 밤중에도 대낮처럼 훤히 보이고 대낮에도 태양빛 너머로 하늘의 별들이 하나하나 또렷이 다 보였던 것이다. 운룡은 나름대로 녀석을 공격할 방도를 미리 생각해 두었기 때문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녀석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뛰어 오르며 손에 쥔 돌멩이로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아이고, 오마니!”

녀석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꺾고 주저앉았다.

“너, 이놈! 네가 이목구비를 가졌다고 사람이라고 하겠느냐? 이 돼지만도 못한 놈아! 어디 오늘 한번 혼 좀 놔봐라!”

운룡은 불같이 노한 목소리로 녀석을 질타하며, 피를 철철 흘리며 땅바닥에서 뒹구는 녀석의 머리를 조그만 발길로 있는 힘껏 찼다. 그동안의 분이 다 풀리는 심정이었다.

“아이고, 사람 살려! 아이고 나 죽네!”

운룡은 땅바닥에서 버르적거리는 놈을 향하여 일갈하였다.

“네 놈이 나이 더 먹고 몸집이 크다고 해서 그동안 내가 누군 줄 모르고 우습게 논 걸 생각하면, 내 지금 당장이라도 네 놈을 싸늘한 송장으로 만들어버릴 터이나, 그것도 인생이라고 타고 난 인연을 가련히 여겨 오늘은 이쯤 해두겠다. 앞으로 다시 한번만 더 나를 건드리면 그 때는 죽은 목숨인 줄 알아라!”

운룡은 손에 쥐었던 피묻은 돌멩이를 내던지고는 개울물에 손을 씻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불한당은 운룡이 먼 발치에만 보여도 슬금슬금 피하며 운룡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혼내 줄 때는 설 건드리면 도리어 당할 수가 있으니, 한번 크게 혼을 내주어야만 꼼짝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린 운룡의 생각이었다.

운룡의 조부 김면섭은 천마리로 이주해 온 후로도 학식 높은 유학자 겸 한의사로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진맥하여 치병에 합당한 처방을 내려주고는 하였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천자문>을 시작으로 하여 <소학>ㆍ<대학>ㆍ<통감>ㆍ<사략>과 사서오경 및 제자백가의 서적들을 두루 섭렵하였고, 중국의 <황제내경>ㆍ<의학입문>ㆍ<경악전서>ㆍ<본초강목> 등과 우리나라의 <동의보감>ㆍ<동의수세보원>ㆍ<방약합편>등 제반 의서들도 모두 통달하였다. 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 우리나라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각종 의방의 연구 및 적용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런 그였으므로 인동에서는 ‘아는 것’을 가지고 그와 겨룰 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자연적으로 인근의 유학자들이나 명산대찰의 학덕 높은 고승들, 그리고 소리꾼과 악기의 명인 등이 그의 집 문턱을 자주 넘나들었다. 운룡은 할아버지를 찾아오는 그 손님들이 할아버지와 나누는 시국담과 학문 토론 등을 어깨너머로 들으며 인간이 구축해 온 무한하다는 정신세계와 불가의 수행 세계, 그리고 기예가 빚어내는 간지러운 즐거움 등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이제 겨우 다섯 살에 불과한 운룡이 보기에 할아버지와 그 방문객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내용이라는 것이 어설프기 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분들이 안다는 것은 고작 하나일 뿐이요 둘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고, 그래서 갑론을박하는 그 모양새 자체가 여간 우스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진리의 본체는 이 우주 전체를 채우고 있는데, 기껏 먼지 한 알갱이만도 못한 인간의 머리 하나도 다 채우지 못한 지식으로 진리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어린 운룡에게는 어쩐 일인지 그런 것들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었다.

운룡은 ‘나는 어째서 그런 것을 볼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다. 그저 그게 당연한 것이고, 자신은 그런 능력의 존재임을 스스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운룡은 날이 갈수록 세상과의 소통에서 점점 더 심한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출처: http://kor.theasian.asia/archives/311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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