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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 김일훈③] “나라 다스리는 것이나 병 다스리는 것은 같은 이치”

작성자
인산한의원
작성일
2023-11-06 15:57
조회
364
김면섭은 꿈을 깨고 나서도 한동안 꿈속에서의 감동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였다. ‘허허, 기이한 꿈이로다. 이건 필시 우리 집안에 새 생명이 잉태되면서 꿈으로 현현(顯現)한 태몽임에 틀림없을 터인데……. 예로부터 봉황은 성천자(聖天子)가 인간세계에 내려온다는 징조를 보일 때 나타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며늘아기에게 곧 태기가 있겠구먼.’

김면섭은 그 꿈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가슴속에 고이 접어두고 있던 터였다. 일찍이 자신의 10대조인 사지공(四知公)께서 성종 23년에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급제한 뒤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 이조(吏曹) 좌랑(佐郞) 등을 역임한 이래 큰 벼슬에 나가지 못했던 가계(家系)에 비로소 큰 인물이 나려나 보다 하는 정도의 기대가 허툰 꿈 얘기를 입 밖에 냈다가 사라질 것을 저어했기 때문이었다.

“금일 성재 선생께서 저의 누옥(陋屋)에 왕림하시어 하시는 말씀의 뜻을 헤아리기가 실로 난감합니다. 기왕에 꺼내신 말씀이니, 좀 더 소상히 앞으로 있을 일을 말씀해 주시면 대비(對備)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김면섭은 한껏 자신을 낮추는 태도로 말했다.

김만득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가슴속에 차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말로써 나타낼 수 없는 답답함 때문에 입안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양의 집에서 길을 떠난 이래 줄곧 그의 가슴을 억눌러 온 강박감이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그러함에도 이제 비로소 태어날 아이의 태를 묻을 자리에 와 있으니, 새로이 자신의 넋 안에 괴어 오는 것은 없을까 하여 눈을 감고 천기(天氣)의 실마리를 더듬어 보았다.

‘아, 나의 작음으로 어찌 이 큰 역사(役事)의 비밀을 예언하리오? 내 공부가 천박하고 내 눈 어두운 것이 실로 한탄스럽구나!’

김만득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스스로의 부족함 앞에서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식경이 지난 연후에 김만득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짐작컨대 수성(水星)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 이 댁 자손은 인간세계의 병고(病苦)를 다스리는 대업을 이루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나 병을 다스리는 것은 이치가 같은 한 가지 일로서, 뛰어난 의원이 이를 능히 해내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세상에서 행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다스리는’ 일에 있다 할 것인즉, 선비들 가운데 높은 지위를 얻어 나라에 든 병을 다스리고자 하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의원이라는 직분에 몸을 숨기고 의술을 베풀었던 예를 우리는 무수히 보아 오지 않았습니까?

이는 의술을 베풀어 백성들을 구제하는 공이 나라를 다스리는 공에 버금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 댁에 오는 아이는 한 나라의 다스림에 견줄 의술이 아니라 온 천하를 두루 다스리는 하늘의 다스림과 견줄 바 되기에 ‘성인’이라 일컬었던 것입니다. 소생이 보았던 수성계의 큰 별이 땅으로 임했다는 것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천지간의 운행 섭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래한 일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이미 땅 기운이 쇠할 대로 쇠해지고, 그 쇠함을 더욱 부채질할 독(毒) 기운이 세상에 미만(彌滿)해 있다는 증좌(證左)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쇠약해진 땅 기운과 미만한 독 기운에 시달리는 뭇 인간들에게 새로운 생명력과 활력을 되찾아주고, 천지 운행의 요체(要諦)와 원리를 널리 알려 다시는 병고(病苦)에 침노(侵擄)당하지 않는 지식을 갖게 하려는 하늘의 뜻에 따라 수성계의 큰 별이 강림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세계는 수백 년 전에 서양에서 시작된 기계 문명의 진보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문명은 우주의 원리에 조화(調和)를 이루어 만 인류의 자연스러운 생존을 도모하기보다는, 도리어 우주의 원리를 깨뜨리고 그에 도전함으로써 인간세계에 크나큰 재앙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땅이 길러내는 것들로 먹고 입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땅을 헤집어 지기(地氣)의 한 요소가 되는 갖가지 물질들을 캐내어 그것으로 문명을 유지하려 하니 동티가 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땅속에서 끄집어낸 것들로 불을 일으키니 그것은 곧 독성 기운으로 변하여 세상을 병들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나 금기(金氣)에 의한 살기(殺氣)를 띠고 화생(化生)한 서방의 무리들인지라 기계 문명을 이용하여 세상을 파괴하고 인간을 살해하는 각종 무기를 만들어 침략을 일삼고 있으며, 그 여파로 본래 목기(木氣)의 생기(生氣)를 따르게 되어 있는 왜놈들까지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지금 저렇게 날뛰고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백 년 안에 인류는 예기치 못한 각종 병독에 점염(點染)되어 쓰러지게 될 것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땅이 꺼져 물속에 잠기고 하늘에 구멍이 나는 대재앙 앞에 속수무책으로 황폐해질 것입니다.

이제 수성계의 큰 별이 이 땅에 보내어짐은 그에 대한 하늘의 대비(對備)인 고로, 김공께서는 부디 새로이 얻으시는 자손이 우주의 원리 중 한 가지라도 더 이 세상에 알려 뭇 인류로 하여금 올바른 정신과 활기찬 육신으로 천명(天命)을 다하는 복락을 누리게 할 수 있도록, 그 어린 동안의 보살핌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http://kor.theasian.asia/archives/31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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